8단 응심 차 방한한 아배 싱 라토레씨
모국 인도 태권도 위상 강화에 전력투구

아배 싱 라토레(Abhai Singh Rathore)씨의 8단 심사 모습(사진=심덕진)
아배 싱 라토레(Abhai Singh Rathore)씨의 8단 심사 모습(사진=심덕진)

“태권도는 제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영혼부터 육체까지. 남은 제 인생도 변함없이 태권도를 가슴에 담을 것이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국기원 고단자 8단 심사에 응심 하기 위해 대한민국 땅을 밟은 아배 싱 라토레(Abhai Singh Rathore)씨. 코로나19로 방한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8단 심사를 보기 위해 미국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라토레씨는“2년 전에 한국을 방문하려 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여의치 않았다”면서“더 이상 (8단 심사를)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 끝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한국에 오겠됐다”고 방한 목적을 설명했다.

그는 인도, 미국 이중 국적 소유자다. 모국 인도에서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왕족 혈통이어서 인도 사회에서 최상위 계층이었다. 그런 그가 태권도 접하고 변하기 시작했다.

라토레씨는“14살 때 태권도를 처음 접했다. 18살때부터 겨루기 선수로 정식 등록하고 선수생활을 시작했다”면서“당시에는 발차기 잘하고 주먹 잘 하면 태권도 잘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선수로서 이렇게 하는 건 기본이다. 더불어 인성, 태권도 정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한데 난 그것을 소홀히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983년 인도 대표선수로 덴마크 세계선수권대회와 1984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겨루기 선수로서 자질도 인정받았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배우고 터득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한다.

라토레씨는“겨루기 챔피언에서 인생의 챔피언이 되고 싶었다. 태권도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내 스스로 깨우쳤고 그런 중요한 가치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뜻을 품고 그는 1993년 도미를 결정한다. 인도서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것.

미국에서는 준리 사범으로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태권도의 우수성을 알렸다.

아배 싱 라토레(Abhai Singh Rathore)씨는 방한 후 1주일 동안 경기도태권도협회 수련원에서 8단 심사를 대비 훈련을 했다. 사진은 김경덕 GTA 회장과 황인식 대한태권도협회 품새 본부장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심덕진)
아배 싱 라토레(Abhai Singh Rathore)씨는 방한 후 1주일 동안 경기도태권도협회 수련원에서 8단 심사를 대비 훈련을 했다. 사진은 김경덕 GTA 회장과 황인식 대한태권도협회 품새 본부장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있는 모습. (사진=심덕진)

방한 이후 경기도태권도협회(회장 김경덕, 이하 GTA)의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라토레씨는“1주일 동안 주야로 GTA 수련원에서 연습을 했다. 황인식 사범의 지도도 특별했다”면서“스승님(준리 사범)과 인연이 있는 김경덕 회장님의 배려로 연습을 충실하게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남은 인생 언제나 태권도와 함께 할 것이다”고 밝히면서“오는 12월 인도로 돌아갈 것이다. 인도에서 태권도 보급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할 것이다”고 말했다.

모국인 인도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라토레씨는“인도 태권도 보급이 1차 목표이다. 그리고 인도는 현재 태권도 질서가 엉망이다. 단증이 부문별하게 발급되는 심사문제도 적지 않았다”면서“인도 태권도 위상을 높이는 프로젝트를 진행 할 것이다”고 피력했다.

이러한 프로젝트 진행에 GTA가 도움을 주기로 약속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라토레씨는“인도 태권도 위상을 높이는 프로젝트에 도움을 주겠다는 김경덕 회장님의 약속이 있었다”면서“GTA와 함께 인도 국민들이 보다 많이 태권도를 접하고 태권도 질서를 바로 잡는 등 인도 태권도 위상 강화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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